동아시아에서 진정한 문화의 선구였던 은나라는 대단히 방대한 분량의 기록을 남겨 오늘날에 전하고 있다. 그것은 갑골문이라고 하는 것으로서, 거북이의 배딱지, 소의 어깨뼈 등에 적힌 당시의 점복 관련 기록이다. 우리는 이러한 기록을 통하여 매우 전면적으로 당시의 문화, 사회, 정치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

  이 기록들은 기본적으로 점복(占卜)을 위해 서사된 것들이다. 따라서 제사에 관한 내용이 상당히 많음을 알 수 있으며, 당시의 은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잡귀들을 섬겼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은나라 사람들이 섬겼던 잡귀들의 명칭이나, 그들을 받드는 양상을 보면, 특수한 점을 찾아낼 수 있다. 그들이 섬겼던 수많은 신적인 존재 중, 제(帝)만큼은 어떠한 제사를 받지 않으며, 그가 인간사회에 내리는 영향에 대해서는 은왕 이하 모든 사람이 그 영향을 벗어나기 위해 제사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은인들이 섬겼던 선공선왕, 혹은 산하의 잡신들과는 현격한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는가?

  이는 사악한 이도교였던 은나라 사람들에게도 애매하게나마 유일신교적인 관념이 존재하였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다신교에서는 신들의 위계서열은 존재할지언정, 대체로 어떤 신에게든지 제사나 기도 등의 행위를 통해 그의 의지를 바꾸게 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은나라 사람들에서의 제(帝)는 그러한 존재가 아니다.

  갑골문의 帝

  갑골문의 帝는 본디 禘의 초문으로서, 나무로 쌓은 장작의 모습이다. 이는 아마도 일종의 번제에 사용할만한 것으로서, 帝라는 최고위신의 표상으로서 사용되었다. 갑골문에 등장하는 어떤 帝자는 두 손으로 받들고 있는 형상인 廾이 추가되어 있는데, 이것은 마치 우리 기독교인이 십자가를 들고 행진하는 경우가 있듯이, 은나라 인들도 그와 비슷한 습속을 가지고 있었음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글을 잘못 읽는 사람은 마치 은나라 사람들이 섬긴 帝라는 존재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오해는 말라. 나는 결코 그러한 이야길 하려는 것이 아니며, 우리 동아시아의 전통에서도 기독교와 마찬가지의 유일신교의 맹아를 나름대로 찾아 발굴할 수 있음을 논하는 것에 불과하다.

 참고문헌
 伊藤道治(2002)『古代殷王朝の謎』, 講談社学術文庫
 趙誠(2000)『甲骨文和殷商文化』,遼寧人民出版社
Posted by 自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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